난 원래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깨끗한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더러운 것에 대한 내성도 높은 편이다.
잘 정리된 집에 들어오면 기분이 좋긴 하지만, 내 너저분한 책상을 봐도 그리 불편하지가 않다.
그래서 자취할 때 청소라는 것은 정말 월간 행사였지..
결혼 전에 누가 청소에 대해서 물어보면 대략 이런 답변들을 했었음..
"먼지는 놔두면 자기들끼리 뭉치게 되어 있어. 그러면 그 때 그걸 주워서 버리면 돼."
"청소라는 활동은 결국 인간이 먼지를 만들어 내는 활동이야. 그러니까 청소를 하면 먼지가 더 많이 생겨."
이런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가 갑자기 자취방에 습격하시겠다고 통보하실 때에나 청소하지,
평소에는 청소의 필요성을 잘 못느꼈다.
그래서 내 방에는 오솔길이 있었다. 오고 가는 길에는 먼지가 안 쌓여서..
물론 1년에 2~3번 정도 "진실의 눈"으로 내 방의 객관적인 상태를 파악할 때가 있긴 하다.
그런 날에는 각잡고 1~2일 정도를 투자해서 확실하게 청소를 하긴 했다.
물론 1주일 안에 원상복귀 되긴 했지만...
특히나 화장실 청소의 필요성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더럽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음.
화장실 청소.. 그냥 물 뿌리면 끝나는 거 아님? 이런 식이었으니까.
그런데 결혼하면서 아내와 집안일에 대한 역할분담을 진행하는데..
매주 청소를 해야 한다고 하네.. 화장실 청소도 포함.. 대략 일요일 10시 30분에..
(날씨와 컨디션에 따라 시간이 조금 바뀌기는 하지만, 이 청소시간은 아직도 유효하다.)
사실 청소하기는 싫었고, 왜 화장실 청소를 1주일에 한 번씩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했지만..
아내는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것과 화장실 청소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고..
이거 두 가지를 내가 맡으면 다른 대부분의 영역은 아내가 청소하겠다고 하네.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했고.. 그 이후로 화장실 청소는 나의 몫이 되었음..
좁은 화장실이지만, 벽, 타일, 세면대, 변기, 욕조를 다 청소하고 샤워까지 하면 1시간이 훅 지나간다.
(신혼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 시간은 큰 변화가 없다.)
분명 처음에는 일요일에 하는 화장실 청소가 지겨웠는데.. 언젠가부터는 자연스런 삶이 되었고..
주말에 어디 놀러가느라 화장실 청소를 건너뛰게 되면면, 시간 날 때 세면대라도 닦게 되더라.
아내는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뭐.. 원리는 단순했다. 칭찬...
결혼 전까지 집 화장실 청소는 다섯 번 미만으로 해봤던 나다.
(그 다섯 번 중에 몇 번은 누군가의 오바이트 때문에 억지로 했던..)
능숙하게 잘 할리가 없지.
그럼에도 아내는 청소 후에 화장실이 너무 깨끗해졌다며,
자기는 이렇게 못 할 거라는 식의 이야기를 항상 하더라.
처음에는 민망했지만.. 반복적으로 듣다보니 나 스스로도 화장실 청소를 잘 한다고 믿게 되더라.
그렇게 첫 신혼집 전세가 끝나고 다음 전세집으로 이사갈 때가 되니
안 시켜도 시간이 되면 화장실 청소를 하러 움직이게 되고..
그 다음 전세계약을 하게 될 무렵에는 화장실의 청결도가 곧 나의 자존심과 연결이 되더라.
학습심리에서 주로 이야기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보상 뿐이라는 거다.
처벌로는 무엇을 학습시킬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이론으로 배울 때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던 내용인데..
이렇게 현실에서 체험하게 되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뭔가 아내에게 조련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 아내가 하는 청소의 범위와 양이 더 많기도 하고..
어쨌거나.. 한 사람만의 노력만으로 부부가 잘 지내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물론 처음에는 어느 한 사람이 생각을 바꾸고 무엇인가 시작을 해야겠지..)
분명 답답하고 짜증나는 상황도 있었을 테지만, 잘 참아준 아내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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