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못 마신다. 그리고 안 마신다.
아버지에게 첫 술잔을 받기 전까지만 했어도 난 대학에 가서 주당에 독설가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왠걸.. 난 술에 엄청 약하더라. 나랑 쌍둥이인 동생은 왜 그렇게 잘마시는 것인지.
결국 연합 엠티를 가서 레몬 소주를 종이컵으로 2잔 마시고는 숙소 변기와 밤새도록 대화를 나눴지.
술은 마시면 주량이 늘어난다고 하던데 내게 늘어나는 것은 술에 대한 불쾌감 뿐이더라.
결국 대학 졸업 전까지 내 목표였던 맥주 500cc 비우기는 달성하지 못했다.
술맛이라도 알았으면.. 술에 취하는 느낌이라도 알았으면 그랬다면 적당히 마셔보기라도 할텐데..
나에게 술이란.. 첫잔에서는 얼굴을 시뻘겋게 만들고 두잔째가 들어가게 되면 결국 위장을 자극하며
결국 두통, 오한과 함께 먹은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게 만드는 요상한 화학물질일 뿐이었다.
살아오면서 억지로 술 먹이는 사람들이 있어서 피곤할 때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술을 두잔 정도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면 앞으로는 술마시란 소리는 안 하더라.
그럼에도 술자리는 좋아한다.
원래는 싫어했는데.. 나이 먹다보니 술자리의 그 분위기 자체가 좋더라.
처음에는 부르기 미안해 하던 친구들도 많았지만..
맨정신으로 총무 역할 해주고 운전해서 집까지 데려다주니까
언젠가부터는 이녀석들이 먼저 찾더라.
물론 술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좋은 건 아니다.
술을 마시면 재밌어지는 사람이 있고, 싫어지는 사람도 있기에..
그런 면에서.. 작가 같은 사람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어떨지 생각해본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술자리 기회도 줄어들고..
무엇보다 편하게 만나서 술자리를 가질 사람들도 만나기가 힘들어지네.
현실에는 없는 재밌는 술친구를 책을 통해 만난 느낌..
가볍게 읽으면서 느껴지는 유쾌함이 좋더라.
위(胃)로 가는 것들은 위로가 된다.
술은 안 좋아해도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이 책에서 가장 공감가는 글귀였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제니퍼 와일리 교수는 창의적인 문제를 푸는 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 0.075%를 제시하기도 했죠.
나에게 창의력이 필요하면 평소 즐기는 스프라이트 제로라도 마셔야 하나.
괜찮다는 말을 듣기는 어려운데 해주는 건 쉽더라고요.
이 쉬운 걸 다들 왜 안 해주는지 모르겠어요.
'괜찮다'는 세 음절을 내뱉기만 하면
이름 모를 당신보다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됐다는 착각도 들던데요.
위로가 힘든 건 아닌데, 그 위로의 말을 건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책보다 유튜브를 자꾸 보게 되서 큰일이야.
아.. 넷플릭스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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